완결을 향한 장면들, 경고를 위한 사물들

나는 우리 주변을 온통 채운 것들을 바라본다. 우리가 걷고, 살고, 활동하는 대부분의 장소가 도시이기에  내 시선은 도시를 향했다. 내가 30년을 산 곳은 신도시였는데 하나 하나 기억나지는 않지만 눈 돌릴 때마다 변화해가던 지역이었다. 신도시에 가장 처음 지어진 아파트였던 우리 가족의 첫 아파트는 아직 그 자리에 있지만 재건축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오래된 신도시는 수십년동안의 확장과 건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규모 주거단지의 건축을 더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도시의 어디를 가도 건물과 도로들이 계속해서 철거되고 새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미 만들어진 도시 안에서의 국소적인 변화가 아닌 아예 아무것도 없던 땅 위에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나는 공사현장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현장에는 공기로 전파되는 듯한 거대하고 놀라운 물리력이 있다. 모래색 평평한 땅, 기다리는 자재들, 날리는 분진과 거대한 소음,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거대하고 육중한 기계들의 놀랍도록 섬세한 동작들, 그에 발맞춘 일사분란함과 엄격한 분위기, 놀라움과 압도함, 두려움과 경탄. 지평을 변화시키는 행위, 능선을 바꾸는 힘은 내게 인간의 ‘일’ 그 자체로 체감되었다. 건설이란 어떤 일인가를 생각한다. 건설, 인간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행위. 이 행위에 대해 내가 알 수 있고 또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산업의 외부자가 관심만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은 앙상했기에 나는 대략적인 뼈대를 맞춰나가며 오히려 외부자로서의 시선에 집중했다. 문서로 습득한 건설 과정과 관찰하여 목격한 현장의 모습들을 머릿속에서 연결시켜나가며 그림을 그렸다. 가장 처음 그린 작품은 본격적인 건설 시작 전의 땅에 앞으로 세워질 신호등, 기둥, 자재들이 쌓여있는 장면이었다. 새롭게 조성되는 공간들은 대게 ‘놀고 있는 땅’에 지어진다. 자연물로 가득 차있지만 서류 상에서는 빈 땅들이 승인, 대금지급, 착공식 등의 스타트 신호를 기점으로 분주하게 모습을 달리해나간다. 계절의 변화보다도 빠르고 극적으로. 첫 작품을 시작으로 나는 빈 땅에서부터 완공이라는 끝을 향하는 공사의 중간점들을 과정별로 그렸다. 각 장면들에 파편적으로 습득한 정보들을 묶고 그 현장에서의 감각과 체감한 것들을 화면에 담아나갔다. 몇 개의 장면들을 연속해서 그린 후 나는 하나의 목적으로 그린 일련의 그림들을 “완결을 향한 장면들”이라 부르기로 했다.

공사현장을 관찰하면서 나는 어떤 사물들과 자주 마주쳤다. 녹색의 풀숲이나 회색의 시멘트를 배경으로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오는 사물들이었다. 발광하듯 가시성 높은 색, 견고하지만 무겁지 않은 공업적 물성, 익숙지 않은 기하학적인 형태, 반사되는 빛은 사물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낸다. 이 사물들은 경고의 의미로 서있다. 도로에 임시로 세워지는 벽으로, 공사 중임을 알리는 용도로, 접근과 통행을 저지하기 위한 물체들로. 경고를 위한 사물들이 모두 주황색은 아니지만 주황색이 지배적으로 사용되고 또 눈에 잘 띈다. 주황색이 사용목적에 가장 적합하므로. 경고를 위한 사물들은 그것의 실제 색과 관계없이 내게 버밀리언으로 자리잡았다. 접근을, 통행을, 제약을 경고하는 버밀리언. 이것들은 빠지지 않는 공사참여자이자 현장의 목격자(물)이었다. 나는 버밀리언 목격자에게 시선을 의탁하여 현장을 바라보고 이야기 할 통로를 찾았다. 바깥에서 바라본 현장의 여러 요소들- 노동의 실행자들, 기계장비들의 움직임,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게 되는 상황들, 건설행위가 변화시켜나가는 수직, 수평의 축조 등을 경고를 위한 사물들의 형상에서 출발한 조각들에 담아보고자 하였다. 동작을 의태한 수직의 조각물로, 나선을 그리는 비닐과 푸른 별로, 불현듯 움직이는 어떤 형상으로. 이 조각들이 분주하게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의 모임을 이루어 서로 호응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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